Emergency Medicine feelingofwine

응급실 근무의 묘미는 일반인들이 평생 살면서 흔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상대적으로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생사를 다루는 곳이다보니 그런 일들이 좀 더 흔하게 생기는 것이리라. 덕분에 일은 고되더라도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대화가 끊길 걱정 없이 썰을 풀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워낙에 썰들이 많다 보니 내 기억에 남으려면 그 인상의 강렬함의 문턱이 꽤 높아야 한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믹서기에 손이 갈려온 환자, 대동맥 안에 철사를 가지고 6개월 넘게 지내온 환자, 부부싸움 하다가 부인이 남편 가슴 칼로 찔러서 온 경우, 노숙자끼리 싸우다 두개골에 칼 꼽혀서 온 노숙인, 내연녀가 다투고 나서 농약 먹고 온 경우 등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진료한 이 환자도 나의 기억 리스트에 올라오는 영예 (?) 를 누릴 것 같다.

. 49세 여성

새롭게 환자로 배정된 이 여성은 입구에서 내 담당으로 분류되자마자 기록을 먼저 열어보았다. 가장 최근에 이 병원에 왔던 게 2010년 이었다. 그것도 별 것 아닌 문제로 특별한 과거력 없이 왔었다. 흠…… 이 정도면 쌩신이겠군.

어라. 근데 담당구역으로 119 카트에 실려온 환자의 보호자로 내원한 남성은 경찰이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경찰과 함께 응급실에 내원하는 경우는

1) 노숙인이거나
2) 폭행사건으로 유치장에서 조사받다가 통증을 호소해서 오거나
3)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응급실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서

이다.

그런데 이 환자는 외모를 봤을 때 그 동안 경험했던 상기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외관 상 위생이 매우 불량해 보였다. 손톱은 한 6개월은 안 자른 것으로 추정되며 머리는 헝클어져 떡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몹시 마르고 수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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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아지의 사람 버젼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하겠다. 함께 내원한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나 : 이 환자분은 무슨 사유로 경찰관님이 보호자로 내원하신 건가요 ?? 다른 가족 보호자는 없나요 ??

경찰관 : 상황이 어떻게 된거냐면요. 이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119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119 신고를 하면서 경찰도 같이 불러달라고 한 거에요. 그래서 저희랑 119랑 같이 이 환자 집에 방문했더니 이 환자는 거실에 누워있고 이 환자의 친어머니가 화장실에 엎드려 있는 채로 사망한 게 확인됐는데 시신 상태를 보니 사망한 지 1달 가량 지난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일단 이 환자는 119로 병원에 보내려고 했는데 이 환자가 또 꼭 이 병원으로 가자고 얘기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나 : ????? 그럼 이 환자는 모친 시신이랑 1달 가량 신고도 없이 같이 있었다는 건가요 ??

경찰관 : 네 그렇습니다. 일단 모친 시신은 다른 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놓은 상황이고 그 일은 그 일대로 경찰에서 조사 중에 있구요. 환자는 병원 진료가 필요할 거 같아서 병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나 : 아 네…… 혹시 다른 보호자는 없나요 ??

경찰관 : 친언니가 있어서 연락해봤는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안 되고 내일이나 되야 병원에 올 수 있다네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음……. 나름 응급실에서 많은 경험을 해서 웬만해서는 놀랄 일이 없을거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은 나도 좀 놀랐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도 나는 의사니 다른 건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인 문제 평가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나 : 환자분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

환자 : (짜증내면서) 아 배가 아파서 왔다니까요. 아까 간호사한테 다 얘기했잖아요. 왜 자꾸 물어봐요.

나 : ??? 아니 환자분 아프다고 응급실에 와서 진료보려는데 왜 짜증을 내세요.

상황으로 봐서 환자가 정상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느낌이 팍 온다. 이런 경우는 90% 이상의 확률로 환자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지 못했으니 시신과 같이 한 달이나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응급실에 정신과 환자들도 자주 온다. 보통은 자살시도를 했다가 미수에 그쳐서 오거나 불안, 우울 등의 증상으로 오는데 이렇게 엽기적인 상황으로 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나 : 환자분이 원해서 이 병원을 오셨고 그래서 저희는 진료를 봐드리려 하는건데 이렇게 짜증부터 내시고 비협조적이니 저희는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없네요. 진료보기 싫으시면 집으로 돌아가세요.

나는 차갑게 말하고는 커튼을 닫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커튼 안에서는 환자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퍼지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짜 진료를 안 볼 리 없지만 이것은 일종의 환자와의 밀당이다. 정신과 환자들은 내 경험 상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차피 논리적 대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상황에 대해 설명해도 이상한 대답들과 반응이 돌아오면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노력이 아깝기 때문에 가급적 이런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료를 한다. (이거 아니어도 쓸 에너지가 많아서 이기도 하다 ㅠㅠ) 보호자라도 있으면 보호자와 얘기하는데 이 환자는 보호자도 없으니 더더욱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과 선생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일단 환자에게 필요한 오더를 지시하고 다시 간호사님과 환자를 보러 갔다. 다시 보니 환자는 바지에 대변을 지린 상태였다. 이에 간호사님들이 환자를 잡고 환복을 갈아입히는 것 보는데 엉덩이에는 욕창도 있다. 거동을 못해서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꾸네 드론이 날라다니네 우주여행을 가네마네 하는 시대에 서울 한 복판의 병원에서 영양실조를 구경하다니 세상은 참 넓고 인간은 다양하다.

환자는 자꾸 자기가 한 달 동안 못 먹었다며 수액을 놓으라고 한다. 환자에게 명령을 받다니 기분이 묘하다. 놓으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상태봐서 어차피 줄 거 였는데 고압적인 자세로 명령하니 왠지 주기 싫어진다. 그래도 의학적으로 안 줄 수 없어서 떨떠름한 기분으로오더를 냈다. 쳇……. 아직 성인군자가 되려면 인격 수양이 부족한 것 같다.

환자가 배가 아프데서 복부 CT 를 진행했다. 환자는 자기가 검은 변을 보고 설사를 했다는 데 아까 환자의 옷에 묻은 변은 그냥 정상변이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면 이제 환자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된다. 아. 네 .그러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환자의 복부 CT 결과가 나왔다. 음…… 이런 CT 는 처음 봤다.

일단 이 컷까지는 그냥저냥 흔하게 볼 수 있는 소견이다. 빨간색 화살표가 복부 명치 주변의 갈비뼈인데 배가 움푹 파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부에 지방이 하나도 없다. 진짜 빼빼 말랐다.

이 컷이 나를 경악케 한 사진인데 화살표 친 장기는 콩팥 (신장) 이다. 흔히 신장은 후복강 장기라고 해서 앞에 간, 대장 등이 보호하고 있어서 신체검진으로
만질 수 없는 장기인데 이 환자는 워낙에 마르다보니 콩팥을 배에서 만질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보여드리자면 이게 다른 일반적인 환자의 콩팥의 위치이다.

화살표가 양쪽 골반뼈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께서 본인의 골반뼈와 배를 만져보면 보통은 영양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아랫배에 지방이 물컹 잡히며 (??? 아. 일단 제 배는 그렇습니다.ㅎ) 뽈록 나와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이 환자는 그런 게 전혀 없고 뼈와 피부만으로 하복부가 구성되어 있다. 영상으로는 영양 실조가 심각한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피 검사에서는 상태가 다 정상으로 나왔다. 빈혈도 없으며 염증도 없고 간수치, 콩팥 수치 모두 정상이다. 영양실조의 상태를 꼭 피검사만으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응급실에서 급하게 치료해야 할 문제는 특별히 없어보인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문제이다. 환자는 영양 상태가 안 좋은 것 말고는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시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회적 문제 빼고. 이제 의학적으로 환자는 입원해서 수액을 맞고 음식을 잘 먹어서 기력을 회복하면 되겠는데 일단 이 병원 입원은 어림도 없다. 그러면 환자는 다른 병원에 전원가서 치료받으면 되겠지만 보호자가 없다. 그렇다고 응급실에서 계속 치료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망했다……..

나 : 환자분. 일단 응급실에서 검사 끝났는데 다행히 이상 없으시네요. 영양 상태 안 좋은 거 말고는 문제 없으니 집에 돌아가셔도 되요. (사실 나도 환자가 진짜 집에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달리 해줄 말도 없었다.ㅠㅠ)

환자 :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한 기세로 노려보며) 지금 한 달 동안 밥도 못 먹고 누워서 지냈는데 어떻게 집으로 가란 거에요 !!! 그리고 집에는 엄마가 죽어서 보호자도 없단 말이에요. 이 병원에서 입원시켜서 치료하세요!!!

정신과 환자와는 말을 가급적 섞지 않는 게 내 진료원칙이지만 이건 답이 없다. 논리로 설득할 상황이 아니다.

이 상황에 대하여 응급실의 당직 교수님과 상의를 했고 담당 구청의 복지과에 문의해서 다른 보호자가 없나 찾아봤다. 다들 아시겠지만 구청에 전화해서 담당자를 찾으려면 한 세월 걸린다. ㅠㅠ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들 진료하기도 바쁜데 내가 구청에 전화하고 있자니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회의감이 든다. 결국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이 환자를 담당했던 간호복지사와는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공무원들의 퇴근 시간은 지나버렸다.

이런 경우 최후의 카드로 정신과 문제로 정신과 병동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지 정신과 당직의한테 전화했다. 하지만 정신과로 입원하려면 본인이 입원을 원하던지 보호자 2인 이상의 동의가 있어서 강제로 입원하던지 해야 하는데 이 환자는 자기는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다고 우기고 보호자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정신과 입원도 해당되지 않았다.

환자가 입원도 안 되고 퇴원도 안 되고 전원도 못 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 울고 싶어라…….
결국 보호자를 찾기 위해 파출소까지 전화했지만 파출소에서는 가족들 주소까지만 알고 전화번호는 개인정보라 자기들도 모르는데 친척이 전라남도 광주라고 한다…….(아까 제일 처음 내원했던 경찰관님은 일하셔야 해서 환자만 응급실에 내리고는 바로 복귀하셨다.ㅠㅠ) 아…… 울고 싶어라 (2) ……..

일단 이 환자는 제껴두고 다른 환자를 보다가 나는 퇴근시간이 되어 환자를 인계 후 퇴근했다. 후임자에게는 처리하지 못한 일을 던지고 나온 듯 해서 무척 미안하면서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궁금한 마음에 환자가 어떻게 진행되었나 기록을 봤더니 환자는 퇴원을 했다.

오…… 이 어려운 환자를 어떻게 퇴원시킨 거지 ?? 기록을 봐서는 정신과 면담을 한 것 같은데 정신과 기록이라서 나는 읽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정신과 환자 진료기록은 정신과의사 아니면 타과 의사는 아예 볼 수 없게 막아놓았다. 개인정보 보호가 중시되면서 그런 듯 하다.) 결론적으로는 이 환자는 경찰관과 전문의의 소견으로 강제입원을 진행한 것 같다. (혹시 스팀잇의 정신과 선생님들 계시면 고견을 구해봅니다). 다만 이 병원은 정신과 병동도 만실이라 연고지 근처의 다른 정신과 병원으로 전원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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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예 드문 것은 아니다. 이런 것도 병원들마다 지역적인 특성으로 기인한 점이 많은데 천안의 모 병원은 주변에 농사하는 인구가 많아서 자살목적으로 농약 먹고 오는 환자들이 많고 전라도의 모 병원은 뱀에 물려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안에서도 병원의 지리적 특성과 연관이 많은데 소속 지역 주민의 경제적 수입의 차이에 따라 내원하는 환자군의 특성이 다르기도 하다.

응급실은 지역사회에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통로이다.

아무튼 이 환자는 앞으로 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거보다 더 놀라운 사건들을 많이 경험하면 기억에서 잊혀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상의 경험은 가급적 하고 싶지 않은 바램이다.
^-^;;;;;

Ps. 이 환자의 의심되는 진단명에 대해서는 비의료인들이 볼 경우 선입견을 가지실까봐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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