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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추참치입니다.

이번글은 저번에 썻던 무오년 독감 이야기를 글버젼으로 약간의 내용을 보강하며 재편집한 버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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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무오년.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감기가 전국적으로 대 유행을 하고 있었다.


충남지역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박씨는 오늘도 두려움에 떨었다.

어느날 갑자기 김씨와 서씨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폣병으로 쓰러져서 집에서 쉰다고 한지 일주일만에 죽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씨와 서씨가 쓰러지자 다른 사람들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던 것.

더 불안한것은 제몸 사리기로는 1등이었던 일본인 관리자 마쓰다씨는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기 시작했고

기침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빈자리를 새로운 일꾼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박씨는 진지하게 공장을 그만둬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가족들 입에 밥이라도 먹이려면 이만한 자리를 찾기 힘들었기에 박씨는 오늘도 불안함을 안고 직물 공장에 나갔다.

다음날 박씨도 기침을 하게 되었고 결국 그 달을 넘기지 못하고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1918년 무오년에 조선 전역으로 감기가 유행을 하게 되었다.

이 감기는 당시 조선인구의 50%가 감염될 정도로 전염성이 컸고 특히 충청도 남부지역에 피해가 컸다.

특히 20~30대 농부 및 노동자들 위주로 엄청나게 사람을 학살한 이 전염병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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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인구의 약 5%, 1억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었다.

전세계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은 조선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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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염병은 어떻게 조선까지 오게 된 것일까?-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지도)

정확히 밝혀진것은 없지만

1차세계대전 이후 병원균을 몸속에 품고 다녔던 여행객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대륙을 횡단해서 조선까지 오게 되었다는 설

그리고

그 당시 미국에서 대유행이었던 점을 들어 배를 통해 입국한 보균자들이 퍼트렸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인보다 조선인들이 피해가 컸을까?-

[첫번째]

-일본인들의 가혹한 수탈로 인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페인 독감의 진행경로를 보면 감기증상으로 인해 체력을 떨어뜨린 사이 폐렴균이 침투해서 몸을 점령.

이후 폐렴으로 고생하다 죽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특히 광부나 공장 노동자같이 공기가 좋지 않은 곳이나 농부나 노역꾼같이 몸을 많이 쓰는 1차 산업직종군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여 피해가 컸다.

더군다나 스페인독감의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서 쉬면 낫겠지 하는 생각이 병을 더 키우기도 했다.

[두번째]

-그 당시 조선에는 의사와 병원의 숫자가 너무나도 적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수십명에 불과했던 의사수는 우민화 정책과 맞물려 중기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전국에 20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며 이는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으로 지목 되기도 하였다.

또한 진료값과 약값이 너무 비싼것도 한몫했는데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사람들이기에
병원에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세계를 휩쓸었던 무오년 독감(스페인 독감)은 무수히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20~30대 남성들은 씨가말랐으며 이듬해 충남지역의 생산량은 바닥을 기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대 유행이었던 스페인독감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환경과 맞물려 1918년 조선에도 큰 비극을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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